향가란 용어가 중국 詩歌에 대한 대칭에서 비롯된 것은 사실이나 여기에는 자기를 낮추거나 겸손해서 붙인 흔적은 없으며 정감적인 뜻에서 붙여진 것도 아니다, 오히려 鄕言鄕語鄕札鄕謠鄕歌라는 말 속에는 우리나라라는 것을 강조한 주체적이고 자주적인 의지가 내포되어 있다는 논의는 경청해야 한
작품의 배경 사상 문제, ,그 양식의 역사적 전개 문제 등의 깊이 관련되고, 나아가서는 개별작품의 올바른 해석으로 원작의 진면목에 접근하는데 있어서 하나의 기점이요, 좌표의 축이 되는 기본문제 일수 있기 때문이다. 세 번째로는 향가의 해독에 있어서 나름대로 몇 작품을 분석해 보았다. 어떻게
Ⅰ. 서동요(향가, 신라시대)
1. 서동요의 원문
薯童謠
善花公主主隱
他密只嫁良置古
薯童房乙
夜矣卵乙抱遣去如
2. 서동요의 작품이해
진평왕(재위 579-632)의 딸 선화공주를 차지하기 위해 서동이 불렀다고 전한다. 그러나 남녀간의 사랑을 내용으로 했던 동요적인 민요가 후대에 전승되며 변
Ⅰ. 신라시대 향가 풍요
1. 풍요의 원문
風謠
來如來如來如
來如哀反多羅
哀反多矣徒良
功德修叱如良來如
2. 풍요의 작품이해
노동하면서 신세타령 하던 노래. 이 노래는 유사 권 4 民志使錫조에 다음과 같이 실려 있다. 작자는 釋良志의 조상이며 고향은 미상이나 선덕왕 때의 사람이다.
Ⅰ. 개요
향가는 광범위한 사회계층들 속에서 전파되고 향가에 대한 사회적 관심이 높아짐에 따라 여러 계급과 계층들 속에서 창조활동이 활발히 벌어졌다. 그리하여 향가는 전시기에 비하여 양적으로 많이 창작되었고 주제사상적 내용도 훨씬 풍부하여졌다. 주제사상적 측면에서 현존하는 작품들을
이 점은 <시조> 종장 첫 3글자의 형식적 원형을 제공했다. <보현십원가> 11수를 제외하면 총 8수가 전한다. 작품으로 <안민가>, <우적가>, <원가>(결사인 9/10구가 망실되었음), <원왕생가>, <제망매가>, <찬기파랑가>, <천수대비가>, <혜성가>, <보현십원가> - 서(序)와 본가 10수를 합하여 11수 등이 전한다.
서동요 역시 배경설화를 참조해보면 진평왕 당시까지 전해오던 민요라 할 수 있을 것이다. 물론 이 설화의 전개상 서동요는 빼어버릴 수 없을 만큼 서사구조에 긴밀하게 연관되어있다. 그렇다고 서동설화가 생기면서 이 노래가 같이 이루어 졌다고 볼 수는 없다. 그것은 서동요 자체가 배경설화 속의
Ⅰ. 개요
신라향가의 존재를 알려주는 기록은 실상에 비해 그다지 많지 않다. 『삼대목』의 편찬사실 등을 적은 『삼국사기』의 기록은 매우 소략하고, 대부분의 정보를 우리는 『삼국유사』와 『균여전』에 의존한다. 이 같은 사실 때문에 향가를 佛讚歌謠의 성격을 가진 노래로 단정하려는 경향도
② 창조적 측면
이 소설은 제목부터가 처용가를 계승해서 쓰여 졌다는 것을 알 수 있다. 하지만 이 소설에 등장하는 정신병원의 여러 환자들의 모습을 통해 작가가 단순히 의처증만을 다루고자 한 것은 아니라는 것을 알 수 있다. 정신병원 원장 한 마태오의 입으로 서술되는 여러 환자들과 그가 바라